여행/13부모님과스페인

몬세라트 바실리카 성당

호이짜0 2013. 11. 20. 14:43

 

이곳 성당앞의 긴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대 성당에서도 따로 미사가 있어서 정문으로  입장하는 사람.

우리처럼 옆문으로 검은 마리아 상을 보기위해 따로 사람들은 엄청난 줄을 지어서 기다리고 있다.

 

 

 

1491년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오늘날의 바스크지방의 아즈 페이티아의 로욜라 성에서 영주의 11번째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7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 아버지 벨트랑은 이냐시오가 장차 커서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1509년, 기사가 된 이냐시오는  나헤라 공작의 지휘 아래 이냐시오는 많은 전투를 치루다가 1521년 5월 20일 팜플로냐 요새 공방전에서 프랑스군이 쏜 포탄에 맞아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부상의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이냐시오는 결국 전쟁 도중에 로욜라 성으로 돌아가 몇 차례 외과수술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아직 마취제가 없었기 때문에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병상에서 《그리스도의 생애 (De Vita Christi)》라는 책을 읽고 그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결국 그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깨어있던 어느날 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한 후 지난날을 후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회복후 몬세라토의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찾는다.

이곳에 그는 자신의 칼을 봉헌하고(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자신의 옷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친다.

이당시 종교재판소의 이단이라는 혐의를 피해 프랑스에 가서 준 박사 학위를 따고 몽마르뜨 성당 지하실에서 가난과 정결의 첫 허원을 했다고 한다.

후에 로마로 가던 도중 십자가를 진 예수의 환시를 체험한 후 자신들의 단체를 예수회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예수회 동지들을 유럽 각지에 선교사로 파견해 학교를 세웠다(우리나라엔 서강대학교). 그의 생활은 극히 검소하고 엄격했다. 1556년 사망

- 위키백과 일부

 

이그나시오 성인 상

 

 

한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한걸음씩 앞으로 전진하는데

성당 실내장식들을 살펴보며 서 있는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검은 마리아님께 소원도 청하고 다시 성당으로 들어와서 미사에 참석했다.

 

오늘은 무슨 날인지 미사도 있었고 미사끝에 에스꼴라니아 소년 합창공연도 볼 수 있었는데

소년 합창단들은 성가 한곡과 카탈루냐 주가 이렇게 두 곡을 들려주었다.

소문처럼 천상의 소리라기 보다는 평범하고 장난기 가득한 소년들이 열심히 불러주는 노래였다.

방문객이 앉고 서고 온 성당을 다 채울 정도로 가득차서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고

정면 위쪽을 바라보니

검은 마리아님을 보려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앞을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3차원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간단히  점심을 먹는데도 시간이 걸려서 푸니쿨라를 타고 전망대에 가보려고 달려갔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중간에 포기 하고 내려왔다.

대신 이날 열리는 치즈 시장에 가서

친절한 치즈가게에서 즐겁게 흥정하며 맛도 보고 치즈를 한가득 샀다.

염소, 양, 소젖들로 만든 다양한 치즈와 견과류 그리고 꿀등

현지인들이 직접 만들어와서  그런지 정말 연하고 순한 맛이 일품이었다.

많이 사니까 좀 깍아 달라고 하니 그럼 오너한테 잘린다고 목을 컫하는 모습에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대신 시럽을 입힌 견과류를 주면서 유쾌하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

 

한시간 이내에 이 모든 일을 하려니 사진 한장 찍을 시간이 없었다.

 

 

계단 중간에 놓인 이 소년상을 검은 마리아상인줄 알았다는 동생얘기에

우리가족은 또한번 웃음 폭풍.

 

이 분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검은 마리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