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9 부모님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차이콥스키

호이짜0 2019. 11. 13. 14:21

 

 1878년 한해동안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4번"과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완성하였다.

이 당시 차이콥스키는 가족과 사회 주변의 압박으로  밀류코바라는 여자와 결혼하는데 바로 별거에 들어간다.( 그녀는 스스로 음악원

제자라고 주장하는데 그녀의 주장일뿐이다)

너무 힘든 결혼생활로 차이콥스키는 일년사이에 외모가 노인으로 변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는데

작곡에만 매달리고 싶지만 생활고로 인해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교수를 맡았는데  이때 그의 후원자가 되는 폰 매크

부인의 후원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창작에만 몰두했다.

차이콥스키는 폰 매크 부인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그녀는 이를 거절하였고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두 사람은 찰나로 스치는

순간이 있었는데 서로를 알아봤지만 가벼운 목례만 남기고 헤어졌다고 한다.

 

파리에서 비제의 "카르멘"을 보고 차이콥스키는 인생의 숙명,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갈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그 뒤 별거  재결합후 다시 헤어져서 두번다시 부인을 만나지 않았고 이 힘든 시기에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면서

차이콥스키는  남자 주인공인 오네긴에 푹 빠졌고 자신과 오네긴을  동일시 하며 힘들어했다고 한다.

이 당시 작곡한 교향곡 4번도 시작은 웅장하지만  점점 일그러진 왈츠풍으로 흐르면서 작곡가의 정신상태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1980년 폰 매크 부인은 파산했다며  갑자기 결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보내 차이콥스키는 큰 충격을 받고 비탄에 빠져 

죽기 직전엔 정신 착란에 빠져 그녀의 이름을 외칠정도 였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병약했던 차이콥스키는 평생 동성애자라는 자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다가 1893년 53세로 갑자기 사망하는데

공식적인 발표는 콜레라였지만 부검결과는 비소 중독으로 나왔다.

그 당시 제정 러시아의 동성애자는 처단해야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속에  왕실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의 유해는 알렉산더 넵스키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차이콥스키 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