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9 부모님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왕가

호이짜0 2019. 10. 7. 14:04




선사시대-

흑해 지방의 초원지대에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족이 스키타이 제국 세움

키예프 루시-동 슬라브 사람들이 러시아에 세운 최초의 국가 ( the Russian of Kiev) 15세기 후반까지 루시라는 이름이 쓰이다가 모스크바 대공국 시대인 1721년 표트르 1세에 의해 러시아가 정식이름으로 채택된다.

 

블라디미르 6대 공후 - 989년 기독교를 받아들여, 비잔틴제국의 황녀 안나와 결혼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국교인 기독교의 한 지파인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여 모든 백성들이 믿도록 만듬. 키릴 문자의 개발

 

몽골 타타르의 굴레의 시기(-1480까지 240년간을 지배)-  몽골의 징기즈 칸, 그 후게자 오고타이 칸, 징기즈칸의 손자 바투는 유럽원정  걔속하면서 키에프 루시를 여러차레 공격, 1240년에  바투의 대군앞에 멸망.바투는  킵차크 한汗국 세워 키에프 루시 사람들을  지배- 우리나라 성종시대

 

 모스크바 대공국의 시대

 키에프의 변경 도시였던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공국을 세움 = 중심 지도자가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이반 3세 ( 이반 대제)=키에프 루시지역을 모스크바 대공국에 편입

*바실리 3세 - 이반 3세아들= 면적 280만 제곱킬로미터, 인구 900만을 헤아리는 거대 중앙집권국가로서의 러시아 국가가 일어남.

*이반 4세- 1533년 바실리 3세 사망, 이반 4세는 세살, 그의 어머니 대공비 엘레나가 통치

1547년 17세의 소년으로 즉위.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차리로서의 대관식

 이반뇌제. 이반 공포제로 불림.- 1584년 이반 4세 53세의 나이로 죽음. 1613년까지 29년간 혼란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일리아 레핀)

*바실리 유이스키가 제위. 농민전쟁 일어남

 

 로마노프 왕조 성립

 *미하일 로마노프를 차리로 선출(이반뇌제의 황후 아나스타샤의 오빠의 손자)

*알렉세이1세(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미하일의 아들.표트르 3세의 아버지

알렉세이+첫번째 아내 사이= 표도르 3세/이반 5세 / 소피아   소피아 왕녀(일리야 레핀)

알렉세이+두번째 아내 사이= 표트르 대제

*표도르 3세

*이반 5세와  표트르 공동 차르(이반의 누이 소피아 섭정)

*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 -1703년부터 네바강변에 서유럽식의 신도시 세우기 시작.1725년 만 53세 되던해 후계자 없이 표트르 대제 사망

표트르 1세가 페테르고프에서 아들 알렉세이를 문책(Nicolai Ge) 러시아 박물관

 

* 에카테리나1세(표트르 대제의 둘째부인) 새로운 차리로 등극

표트르 2세( 표트르 대제의 손자.알렉세이의 큰아들) -정통 로마노프 왕조의 남계는 여기서 끝

* 안나(이반 5세의 딸,표트르 대제의 조카딸) 즉위 - 유흥의 여왕  얼음집에서의 결혼식(야코비)러시아 박물관

엘리자베타(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1세 딸)이 쿠데타로즉위 

표트르 3세(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1세의 딸인 안나 페트로브나의 아들)

* 예카테리나2세(표트르3세 아내)-팽창정책,학문 예술 발전. 계몽 사상

*파벨 1세(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의 아들) -푸카초프의 반란-명장 알렉산드로 바시리예비치 수보로프 푸가초프 난 진압

*알렉산드르 1세(파벨 1세아들) 후사없음

니콜라이 1세 (파벨 1세아들)  알렉산드르1세와 19살 차이.

알렉산드르 2세(니콜라이 1세+알렉산드라 표도르브나의 아들) - 농노해방-지극히 기만적 해방농노는 사실상 다른 형태의 경제적 예속.

크림전쟁 패배로 실추된 국가 위신을 바로잡기 위해 파리조약체결과 평화선언 발표. 농노해방, 대학정책개혁, 사법제도 개혁, 의회신설, 지방정부 개편, 계급차별 없는 징병제. 슬라브족의 옹호자(불가리아 독립.건국의 아버지) 1867년 알래스카를 미국에 팜- 조선 철종말기-고종초기

여러번의 암살시도 끝에 페브체스키 다리에서 1881년 폭탄테러로 사망(나폴레옹 3세가선물한 방탄마차로 무사했으나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다시 폭탄테러) 이 다리부근에 아들 알렉산드르 3세가 피의 구원성당을 세움.

 

 

*알렉산드르 3세 (1845-1894) 파베르제의 시계(에르미타주 신관)

파리의 알렉산드르 다리(1896-1900)는   1892년 프랑스와 러시아간의 공조를 성사시킨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의 이름을 땀.

아들 니콜라이 2세가 다리의 초석을 내림

 

19세기 러시아는 다섯명의 차리 강약순서

약한 알렉산드르 1세, 강한 니콜라이 1세, 약한 알렉산드르 2세, 강한 알렉산드르 3세, 약한 니콜라이 2세 순서

 

니콜라이 2세(1868-1918) - 마지막 차리인 그는 부왕의 억압통치 게속= 시대적 흐름에 역행 / 루이 16세 부부 닮은꼴/동학혁명, 청일 전쟁

 

1905년 1월 러시아 혁명의 전주곡=피의 일요일 사건- 가폰신부(정부의 앞잡이?)의 선도아래 노동자들의 열악함을 황제에게 직접

 알리고자 겨울궁전앞까지 행진. 황제의 초상화를 들고 비폭력 읍소했으나 근위병인 코사크 용병들이 발포. 수백명 사망. 시위진압(알렉산드르 황제는 이때 겨울궁전에 없었다)

러일전쟁

이 당시 파업주도 단체이름; 소비에트(위원회, 회의. 커미티. 커뮈니티)등장. 어용 노동자단체들이 너무 많아 별도 파업위원회(노동자 소비에트)로 만들어서 각 대표를 뽑아서 짜르반대 시위주도.-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 농민 소비에트= 이들의 성향이 짜르체제를 엎어버리자는 사회주의자는 아닌상태.

소비에트의 특징-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식민지를 갖고있던 유럽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없던 시절. 러시아나 유럽이나 더 힘들고 노동집약적인 노동자는 여성이 많은 상태. 자연스럽게 공장에 따라 여성이 대표가 될 확률높음.- 굉장히 급진적으로 보임. 여성의 권한이 커지고, 다들 모여서 회의하다보니 직접민주주의가 작동되어보임. 

트로츠키 "이시점의 차리즘 체제는 너무 낡고 부패해서 경륜과 행동력을 겸비한 통치자를 탄생시킬 수 없었다."

전함 포템킨 반란-1905년 6월

1905107일의 시위(일리야 레핀)

 

니콜리이2세는 1917년 3월  동생 미하엘에게 넘기고 하야, 미하일도 하루만에 포기각서 -로마노프왕조 막을 내림

17년 3월부터 8월 1일까지 1917년 3월 9일부터 8월 1일까지 가족과 함께 차르스코예 셀로(푸쉬킨) 내의 알렉산드롭스키 궁에 연금되었다

1918년 4월말 에카테린부르크로 이송. 7월 지역 볼세비키에게 총살

 

참고- 러시아 혁명사/김학준 저 . 정재원교수 팟케스트 외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