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일
정말 화려한 외관의 카잔스키 대성당
그러나 정작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그날이 무슨 행사가 있어서
마당에선 다과회가 막 끝나가고 있었는데
우린 쿠키와 홍차를 대접받을 수 있었고- 꼭 맛이 문제가 아니고, 그냥 그 문화를 접하는게 즐거웠다.
내부는 온통 생화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당이다.
향내가 진동하고 자기의 죄의 값을 대신하는 초를 사서( 지은 죄가 크면 큰초를 ) 꽂고 기도를 한다고 한다.
벽을 따라서 죽 성화가 걸려있고 그 곳곳마다 모두 기도를 하는 여자분들.
머리에 두건을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소박하고 진지해 보였다.
성당 정원의 다과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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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나멘스키 수도원
이곳은 작고 조용한 수도원이었는데 정원의 꽃들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제독의 연인"의 주인공인 코르챠크의 동상
그의 주검이 발견된 곳에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하려면 러시아 혁명을 알아야하는데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 숙제가 하나 늘었다.
아쉽게도 이곳 수도원주변에도 노숙자같은 사람들이 많았고, 수도원안은 사진촬영이 금지였고 접근금지구역엔 누군가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고, 조용하고 근엄했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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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군대를 파견하고 이로인해 농업이 황폐해지고 실업자가 증가하는등 러시아는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결국 1917년 3월 , 곳곳에서 식량폭동과 함께 도시는 마비되었고 차르와 귀족들의 학정에 못이겨 민중의 불만은 폭발직전이었다.
시위진압병사에게 발포명령이 떨어졌지만 병사들은 총부리를 지휘관에게 돌렸다고 한다. 병사들은 무기를 꺼내 시위대에게 나눠주고 황제가 있는 겨울궁전으로 몰려가황제의 깃발을 내리고 붉은색의 혁명기를 올렸는데 이를 3월혁명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니콜라이 2세 황제가 물러나고 300년간 이어져온 로마노프 왕조가 막을 내리게 된다.
이듬해 시베리아 이송중 로마노프 왕조는 살해당하게 되고,,
임시정부가 들어서지만 농민들이 간절하게 바라던 토지개혁같은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점점 불만이 커지게 되는데 이때 나타난 인물이 레닌이라고 한다.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받으며 11월 ,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정부인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이게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하며, 이때 전쟁중지를 선포하고, 지주의 개인토지소유금지. 러시아에 사는 소수민족의 자치권도 인정하게 된다.
1919년 레닌은 소비에트 정책에 반대하는 사회 혁명당 의회를 강제 해산 시키고 볼세비키당의 독재체재를 확립한다.
볼세비키당이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를 상트 페테르 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이전. 1922년 러시아를 중심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즉 소련을 수립하게 된다.
1924년 레닌이 숨지고 스탈린이 등장해 정적들을 숙청하고 레닌 우상화작업...등 러시아 혁명이 변질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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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콜차크 제독은?
러시아 혁명 후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던 백군과 혁명군인 적군과의 대립
그 백군의 지휘관이 알렉산더 콜차크 제독이다.
동 우랄지방의 옴스크라는 지방을 점령하고 적군과 싸우던 백군은 그곳도 1919년 11월 점령당하자 적군의 손이 미치지 않는 시베리아의 오지로 이동한다.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군자금 약 500톤의 로마노프 금화와 제정러시아의 귀족, 승려와 여자 어린이 등 망명객과 군인, 125만명은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죽음의 행렬을 시작한다. 이는 블라디보스톡을 함락하고 시베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연합군 일본의 지원을 받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8000키로의 시베리아 횡단.
고난의 행군끝에 25만명의 사람이 살아남아 이르크추크에 도착했지만 영하 70도의 추위에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건너다가 그대로 호수에서 다 동사했고 봄이 되고 해빙이 되고 모두 바이칼 호수로 가라앉았다는 비극적인 이야기.
연료도 바닥나고 말도 죽어가 500톤의 금화도 버려야했다 (바이칼 호수에 이 금화가 버려져서 이걸 찾으려고 푸틴이 이곳에서 수영을 한다는얘길 읽었다^^)
그 과정에서 콜착은 혁명군에게 잡혀 처형되었는데 그 시신이 앙가라 강변 , 저 수도원 옆에서 발견되었다고 함.
여기서 또 1차 대전에 참가했다가 포로로 잡힌 체코군인들이 용병으로 재탄생해 러시아군과함께 독일군과 싸우지만 러시아가 전선에서 발을 빼자 오갈데 없게 된 체코
군단,, 고향에 돌아가려하지만 비우호적인 볼세비키정부는 이들을 동쪽끝 블라디보스톡으로보내 태평양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 시베리아 철도로 동진을 계속하던 이들은 여러가지 충돌과 폭동에 휘말리고 결국은 이르쿠츠크를 점령하고 ,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곤경을 맞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연합군은 콜차크의 백군과 체코군단을 연계시키고 미국은 블라디보스톡으로 무기를 보내온다.
콜차크에게 체코군단은 주축군이었지만 이들은 남의 전쟁에 관심없고 오로지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어서 전투에도 소극적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장악하고 오로지동진만을 계속한다.
그러나 콜차크의 옴스크정부를 지원하던 연합군이 하나둘 손을 떼고 체코용병도 콜차크에게 반란시도하며 이탈을 시작,
그래서 결국 콜차크정부는 시베리아를 횡단 할수 밖에 없게 된것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장악한 체코군은 결국 혁명군에게 콜차크와 황금을 넘겨주는 대신 블라디보스톡까지 자유 통행권을 얻고 마침애 1920년 블라디 보스톡에 도착, 일본 미국을 거쳐 신생 독립국으로 탄생한 조국 체코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금괴중 일부가 프라하로 옮겨졌다는 이야기. 콜차크의 체포당시 일본군에게 맡겨졌던 금괴들은 일본군이 가로챘다는 이야기,, 정말 흥미진진하다.
갑자기 자료들을 찾다보니 콜착크보다도 이들 체코군인들의 고향돌아가기 분투기가 더 애처롭고 찡하다,,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은것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무장해제한 이들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독립군과 교섭해 소총, 기관총, 탄약등을 처분하는데 이 신무기를 가지고 우리 독립군은 청산리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근현대사를 보다보니 독립군 대목에서 이르쿠츠크 파가 나오는걸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그리고 이광수의 "유정"이라는 소설에서도 주인공들이 시베리아로 도망치는데 그곳이 이르크추크라고 하니, 우리나라와는 깊은 관계를 가진곳이라는걸 뒤늦게 알게되었다,
어쩐지 그곳 분위기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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