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궁은 예카테리나 대제가 아닌 표트르 대제의 두번째 부인인 예카테리나 1세 사이의 딸인 엘리자베타가 어머니의 이름을 따 지은 궁이다.
본명이 마르타인 예카테리나는 발트해 연안 출신의 노예 출신으로 팔려와 스웨덴 군인과 결혼했던 여자를 표트르 대제가 절친인 멘시코프의 집에서 보고 데려와 맘에 않들던 첫번째 왕비를 쫒아내고 두번째 왕후로 삼았고 표트르 대제가 왕위 계승자 없이 사망하자 절친인 멘시코프가 자기집 하녀출신인 예카테리나를 여제로 앉혀놓고 그녀 대신 맘껏 정권을 휘둘렀다고 한다.
예카테리나 1세야말로 최고의 신데렐라가 아니었을까 싶다.
9일. 월. 비바람
눈을 떠보니 새벽 3시였다.
진즉 잠이 깬 엄마와 일어나 괜히 옷정리를 하다가 낯선 거리의 가로등과 흐린건지 어두운건지 컴컴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앞 건물 위로 보이는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먹구름이 잔뜩낀 지붕 위로 까마귀가 울어대기 시작하더니 온갖 새들이 날아 다닌다.
5층 건물 위로 솟아오른 저 나무는 얼마나 크길래 지붕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걸까.
2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대여섯개 테이블 중 창가에 앉아 다소 뾰루퉁한 표정의 곱슬머리를 대충 감아올린 머리에 보라색 작업복을 입은 식당아주머니의 질문에 커피 하나 차두잔을 말 하니 귤 한개씩과 밀가루 떡같은 네모난 음식(구운 치즈라는데 낯선맛이다)이 담긴 접시를 시크하게 갖다놓는다. 마른빵을 치즈와 분홍 소시지와 함께 먹으며 뜨거운 차를 마셨다.
큰 테이블엔 러시아 여행객들이 단체로 앉았는데 아침부터 기운이 넘쳐보인다.
어젯밤에 있었던 데스크의 직원은 눈을 내려깔고 앉아 있어 인사를 건네려다가 머쓱해졌다.
여행 첫날인 월요일 아침, 비와 바람이 거센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에르미타주도 쉬는 날이고 여러 곳을 거론하다가 택시를 불러서 푸쉬킨에 있는 예카테리나궁까지 가기로 했다.
비와 추위를 막을만한 옷들을 챙기고 우버는 버벅대다가 얀덱스로 연결되는데 이 마저도 원할하지가 않다.
시간만 보내다가 가까운 센나야 지하철역으로 가서 2호선 끝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지하도를 걷기도 만만치 않았고 토큰을 사는곳에는 몇명의 험한 인상의 경비인지 경찰인지가 서있었는데 기계로 토큰을 사느라 헤매는 우리를 보다가 창구로 가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이곳 지하철은 들어갈때 한번 넣은 토큰은 나오지 않는 시스템이다.
지하로 향한 급경사의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는데 가로등같은 전등들이 세워져있고 경사끝의 작은 부스에는 모자와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인형처럼 앉아서 늙어가고 있었다.
1950년대에 만들었다는 러시아 지하철을 타고보니 철판을 두드려 부수는듯한 시끄러운 소음과 습하고 더운 공기가 휘몰아치고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딱딱한 철판 위에 가죽이 씌워져있는 지하철 의자는 백년이 지나도 끄떡 없을것 같다.
출근시간은 지난것 같은데도 꽤 붐비는 지하철에서 걱정이 많은 듯한 표정의 사람들과 섞여 조카와 엄마를 바라보며 앉아있자니 러시아에 온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Sennaya ploschad에서 탄 지하철을 2호선 종점인 Kupchino역에서 내려 오른쪽 출구로 나가니 작고 낡은 버스들이 여러대가 서 있다.
길을 건녀야 할지 망설이는데 한 운전기사가 다가 오더니 창문의 Catherine이란 글씨를 가리키며 타라고 한다.
우리가 보나마나 그곳에 가는 사람들임을 알아차린것 같다.
길을 건너간 버스는 마저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버스는 마구 흔들려서 승차감이 영 아니었다.
관광객들을 싣고 달리는 대형 관광버스는 이층 버스 크기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며 달리는데 일반 시내버스는 낡고 좁아서 좀 놀랐다.
시내를 벗어나고 한적한 길을 달리다가 넓게 뻗은 공원같은 길을 달리더니 점점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동네로 들어섰다.
40여분을 달려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내려 바로 길을 꺽으니 멀리서 빛나는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몰려가는 중국인들과 섞여 입장.
성수기(8월말까지)에는 오전에는 단체만 입장시키고 12시부터는 개인들이 입장할 수 있다했는데 우린 거의 10시반쯤 도착했다.
정원표를 끊고 들어가보니 중국인 단체 줄이 있어서 개인 입장줄은 따로 있나해서 경비에게 물어보니 무조건 그 뒤로 줄을 서라고 한다.
중국인줄은 끊어진 ㄱ자모양으로 한 모퉁이를 지나 길을 건너 가로수 아래까지 서있다. 그 뒤로 가서 서있는데 순식간에 우리 뒤로도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정원을 향하여 줄이 길어진다.
마냥 서 있기가 답답해서 앞으로 가 살펴보니 줄 초입의 팻말에 여기서 부터 3시간이라고 써있는걸 보고 너무 놀라서 서 있는 경비에게 물으니 알수없는 러시아말로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그곳 줄 끝의 팻말에는 4시간이라고 써있다.
그럼 우리는 5시간을 기다리라는 말인가 싶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우산과 옷들을 꺼내입고 간식들을 먹으며 마냥 서 있다.
푸른색 궁건물앞에는 사람들이 보이니 누군가는 입장한것 같은데 줄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냥 서있으니 답답하다.
우리 앞에 서있는 커플이 러시아 사람같아 팻말에 3시간 4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써있는게 맞냐고 묻자 러시아어로 긴 대답이 돌아오는데 당최 뭔말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 앞에 서 있던 한 관광객 남자가 뒤를 돌아보더니 그건 거짓말같고 12시부터 입장이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될것 같다고 말 해줘서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시간 넘게 서서 기다리니 12시5분전부터 줄이 움직인다.
줄을 끊어서 조금씩 입장시키기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우리도 예카테리나 궁 안으로 들어가 다시 1000루블의 표를 끊고 나서도 붐비는 현관에서 우왕좌앙하다가 조카만 클락룸에 배낭과 옷을 맡겼는데 엄마와 내 곁옷을 문제삼아 다시 클락룸에 가려하니 잘 뭉쳐서 가방에 넣으라고 해서 허리에 묶고 붉은 양탄자가 깔린 계단 앞에서 혹시 리프트가 있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2층으로 올라간 후.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는걸 깜빡했다는걸 알았지만 다시 내려갈 엄두는 않나고 별 새로울 것없는 방들을 지나 사람들틈에 섞여서 끝으로 갔다가 돌아오니 호박방이다.
6톤의 호박으로 치장했다는 곳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고 단체 중국인 관광객을 피해 방 한 두개는 서둘러 지나치다보니 관람이 끝나버렸다.
궁전 총 길이는 300m. 55개의 방이 있다는데 개방되는 곳은 몇개뿐이라고 하는 말이 맞나보다.
빗속에서 땀을 식히면서 점심 먹을데를 찾는데 야외 카페테리아는 너무 추워보이고 궁밖으로 나와도 식당은 없고 그저 푸른나무와 맑고 넓은 동네풍경만 보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9시부터 기다리나 11시부터 기다리나 사실 입장시간은 큰 차이가 없어서 우린 운이 좋은 편이었다.
궁 앞 부스에서 파블롭스키역 가는 버스 정류장을 물어보니 손짓으로 가르켜 줘 긴가민가 찾아가니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키릴 문자를 두드려 맞춰 읽다가 다가오는 버스에 물어보니 여자 차장이 내려서 자기네 버스는 아니고 다른 버스를 타야한다고 정류장 팻말을 가리킨다.
다음 버스는 타라고 해서 탔는데 안내방송도 없고 어디가 파브롭스키 역인지 알 수가 없으니 창밖만 목이 빠져라 봐도 푸른 공원들만 스쳐간다.
버스기사에게 다가가 물으니 파블롭스키 궁이냐 공원이냐를 묻는다. 우린 역 앞에서 식사를 하고 비젭스키로가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는데 버스가기사가 스테이션 이라는 말을 못알아 듣는 사이, 버스는 달려만 가고 당황해서 팔레스라고 대답하니 더 앉아있으라고 한다.
버스에 탄 러시아 여자들이 이제 내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사인을 주었다. 푸르고 아름다운 길을 달려서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 우릴 내려주고 버스는 가 버렸다.
막 그친 비를 머금고 반짝이는 잔디와 장대처럼 뻗은 나무들이 우거진 길 앞에 덩그러니 서있는 건물이 파블롭스키 궁이겠지 하며 주변을 둘러봐도 관광버스 몇대와 모스콥스카야역으로 가는 미니 버스만 서있다. 순간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저 버스를 타고 그냥 시내로 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할인이 없는 궁 입장권을 끊고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여자가 오른쪽 문으로 들아가라고 손짓해 우린 레스토랑 간다고 하며 왼쪽의 식당쪽을 가리키니 어 그래? 하는 표정이다.
넓고 천정이 높은 홀 가득 붉은색 식탁보가 깔린 둥근 테이블들이 놓여있는 곳이라 혹시 연회장에 잘못 들어왔나 싶었다.
작은 카페테리아처럼 차려진 카운터에서 어렵사리 주문을 하다가 한 남자가 가져가는 리조또같은 걸 주문하니 그것은 직원들만 해당된다고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외부인은 우리뿐이고 여행 가이드들이나 이곳 직원들이 너무 넓은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있다.
작은 물 한병도 3천원이 넘는 곳에서 보르쉬와 연어 크레페와 감자튀김으로 식사를 하고 내리쬐는 햇살에 끌려 나가니 비는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마당위에 가득 덮여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입구를 못찾고 경비원에게 물으니 우리 입장권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피더니 다시 저쪽으로 들어가라고 해 가보니 뮤지엄 입구라고 써있다.
이곳도 리프트는 없고 계단으로 다녀야 하는데 엄마는 너무 힘들어하신다. 사람없는 한적한 궁 내부를 둘러보는데 2차대전때 폭격으로 부서진 궁을 방마다 특색을 살려 아름답게 꾸며놓은 걸 확인하고 나가서 골프장인가 싶을 정도로 넓게만 폎쳐진 잔디와 시냇물, 나무들을 감탄하며 바라보다가 500루블씩을 주고 20여분간 마차를 타고 돌았다.
궁전의 면적만 600헥타르(600만 제곱미터)라고 하니 다 둘러보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파블롭스키 기차역에서 내려 일부러 공원을 가로질러 예카테리나 궁까지 걸어가는 사람도 많은가보다, 숲 여기저기서 드문드문 걷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한적한 숲길을 걷는 것이 좀 무섭지 않을까?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조카의 핸드폰 밧데리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아껴야했다.
아름다웠던 파블롭스키 궁을 나와 버스가 언제나 올지 막막하게 서있는데 버스 한대가 와서 멈추는데 세상에 Kupchino역까지 가는 버스라고 한다. K-287번 버스였는데 아침에 타고온 버스가 K-286번 이었는데 이 두 버스 노선이 같은가 보다.
선물처럼 다가와 준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리꽂는 햇살을 받으며 달리다가 쿱치노 역에서 내려 전철을 갈아타고 달려서 도착한 센나야역 출구로 나갔는데 방향을 잘못잡고 한참을 헤맨 후에 제복을 입은 친절한 두 현지 청년의 도움을 받아 호텔을 찾아갔다.
쿱치노 역에서는 기계로 토큰을 샀는데 200루블 지페를 넣으니 잔돈이 않나오고 대신 토큰이 4개가 나오는 바람에 창구로 가서 한개를 환불해 달라고 하니 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지만 환불을 해주었다.
센나야 역 출구들이 모두 똑같이 생긴걸 모르고 아침에 들어간 곳과 같은 곳으로 나왔다고 믿고 엉뚱한 방향으로 걷다가 잘못된걸 깨닫고 다시 센나야 광장으로 돌아가서 밧데리가 나가버린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데 지나가던 은인들이 호텔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오늘 만난 지하철 창구, 궁 입장권 파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고 버스기사, 궁과 지하철 경비원들은 모두 남자다.
숙소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가 저녁을 먹으러 다시 센나야역에 있는 그루지아 식당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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