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락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
그 놀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웃음이 서름하고 바보처럼 들린다면
아, 그것은 영원히 먼 곳에 있다고 여긴
사악한 적의 경고로는
이제 그치지 않으리라.
연애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천국에의 동경을 느끼지 못하고
흐뭇하게 여기고만 걸어간다면
영원을 청춘에게 약속한
마음속 가장 깊온 곳에 있는 시를
아, 조용히 포기하는 것이다.
욕을 듣고도 분개하지 않고
못 들은 척 태연히 있다면
아, 그때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아픔도 없이
갑자기
성스러운 빛이 꺼지는 것이다.
예술가
몇 년 동안이나 정열을 기울여 내가 만든 것이
소란한 시장에 진열되어 있다.
흥겨운 사람들은 그냥 스쳐가면서
웃고, 칭찬하고, 좋다고 한다.
그들이 웃으면 머리에 씌워 주는
이 흥겨운 월계관이
내 생명의 힘과 빛을 다 삼켜버린 것을
나의 희생이 헛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행의 비결
목표도 없이 떠도는 것은 젊은 날의 즐거움이다.
절은 날과 함께 그 즐거움도 나에게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목표나 의지를 의식하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 떨러지고 말았다.
목표만을 좇는 눈은
떠도는 재미를 알지 못하고
여로마다 기다리고 있는
숲과 강과 갖가지 장관도 보지 못한다.
나는 떠도는 비결을 계속 배워 나가야 한다.
순간의 순수한 빛이
동경의 별 앞에서도 바래지지 않도록.
여행의 비결은 이것이다.
세계의 행렬에서 함께 몸을 숨기고
휴식 때도 사랑하는 먼 곳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
혼자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도달점은 모두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돌아서 갈 수도, 셋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움은
혼자서 걸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내면으로 가는 길
내면으로 가는 길을 찾은 사람에게는
작열하는 자기 침잠 속에서
사람의 마음은 신과 세계를
형상과 비유로만 선택한다는
지혜의 핵심을 느낀 사람에게는
행위와 온갖 사고가
세계와 신이 깃든
자신의 영혼과의 대화가 된다.
책
이 세상의 어떠한 책도
나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살며시 너를
네 자신 속으로 돌아가게 한다.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은 네 자신 속에 있다.
해와 별과 달이.
네가 찾던 빛은
네 자신 속에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네가
갖가지 책에서 찾던 지혜가
책장 하나하나에서 지금 빛을 띤다.
이제는 지혜가 네 것이기 때문에.
교훈
사랑하는 아들아,
사람들의 말에는
많든 적든
결국은 조금씩 거짓말이 섞여 있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기저귀에 싸였을 때와
후에 무덤 속에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정직한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조상 옆에 누워
드디어 현명해지고
서늘한 청명에 싸여
백골로 진리를 깨우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며
다시 살아나고 싶어 한다.
오래된 정원
부서진 낡은 벽
그 틈새에 이끼와 작은 양치류가 자라고
검은 주목들의 틈바귀에서
불같은 햇빛이 조각나서 번쩍번쩍 흘러나온다.
바깥에는 8월이 끓고 작열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이끼 낀 그늘진 구석에
회양목 울타리가 떫은 향기를 풍기고 있다.
패랭이꽃의 발간 빛에 피처럼 젖어서.
잡초 밑은 검게 젖은 흙이 비옥해져서
수북이 쌓여있고
위쪽에는 오래된 수척한 나뭇가지가
드문드문 성급하게 뒤엉켜 있다.
녹슨 빗장 뒤에는
노래와 전설이 소곤거리면서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아무도 풀지 못하게
문이 지키고 있다.
헤세 시집에서
송영택 옮김. 문예 출판사
헤세 홈페이지;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https://www.hermann-hesse.de/en/node/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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