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note

타타르족의 운명

호이짜0 2014. 3. 14. 13:35

 

[월드리포트] 크림반도 타타르족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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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림반도 남서부에 ‘바흐치사라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크림 타타르족의 옛 수도입니다. 지금도 타타르족이 모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암벽으로 둘러싸여 요새처럼 보입니다. 하나 뿐인 마을 진입로를 따라 경사진 길을 올라가면 ‘크림 한국’의 궁전이 보입니다. 건물 색깔은 바랬지만, 반도를 호령했던 타타르족의 영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타타르족은 회교도여서 마을 곳곳에 이슬람 사원이 있습니다. 마을은 겉으로는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웃음은 사라졌습니다. 외지인들을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건 집이 많다는 게
특이했습니다. 타타르족이 모여 사는 마을들은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남자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동네를 순찰합니다. 이슬람 사원에 본부를 차려놓고 24시간 순번을 정해 마을을 돌아다닙니다. 의심스런 차량이나 인물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외지인은 러시아인입니다. 크림 타타르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왜 러시아를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림 타타르족은 크림반도의 원주민이었습니다. 몽골의 후손으로 크림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노예 무역으로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1783년 러시아가 크림을 점령하면서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지역이 됐습니다. 바로 1853년 크림전쟁입니다. 3년간 전쟁으로 크림은 황폐해졌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자 틈새를 이용해 크림은 크림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독립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것도 잠시, 다음해인 1918년 타타르 정권은 붕괴됐고, 소비에트 연방으로 다시 편입되면서 크림은 계속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놓였습니다. 1921년 대기근이 시작되자 소비에트 연방은 크림반도의 모든 음식을 수탈해 갔습니다. 타타르족은 10만명 이상 굶어 죽었습니다. 터키와 루마니아로 탈출하기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최악이었습니다. 한때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다가, 1944년 5월 소비에트 군대가 크림을 재탈환했습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타타르족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를 들어 크림반도에서 추방을 명령했습니다. 사실상 인종청소였습니다. 당시 타타르족 25만명이 기차에 태워져 중앙 아시아로 쫓겨났는데, 가는 길에 40% 이상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앙 아시아에 도착한 타타르족은 소련 붕괴 전까지 크림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대신 크림반도는 친 러시아계 이주민들로 채워졌습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타타르족은 고향인 크림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일가를 이뤄 지금은 크림반도에 26만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크림 전체 주민의 13% 정도입니다. 60%인 러시아계, 24%인 우크라이나계에 이어 세번째 민족입니다. 원래 크림반도의 주인이었지만, 지금은 러시아계나 우크라이나계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크림 공화국의 러시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상황에서는 그나마 세 민족간 공존이 가능했습니다. 크림의 다수는 러시아계이지만, 엄연히 우크라이나 땅이어서 러시아계와 우크라이나계, 타타르족이 절묘한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불기 시작한 친 서방 바람이 타타르족에게는 불행의 씨앗이 됐습니다. 친 서방쪽인 야권의 집권으로 크림도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러시아로 편입될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치밀한 크림반도 장악 시나리오 영향으로 러시아계가 크림의 주요 기관을 이미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형식적인 절차뿐 입니다. 16일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 주민들은 “우크라이나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할 것인가?”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러시아계가 절반 이상이어서 러시아 편입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타타르족 지도자들은 주민투표 불참을 선언했지만, 선거 결과를 바꾸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주민투표에서 러시아 합병으로 결론이 나면 타타르족은 새로운 선택을 강요 받게 됩니다. 타타르족 일부는 이미 크림반도 경계선을 넘어 탈출하고 있습니다. 망명입니다. 수백 명이 크림을 떠나 우크라이나 본토나 타타르족이 많이 사는 중앙 아시아 국가로 되돌아 갔다고 우크라이나 국경 수비대는 밝혔습니다.
     크림 반도에 남으려면 힘에 순응하거나 저항해야 합니다. 순응하자니 뼛속 깊이 새겨진 러시아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장이 약한 타타르계 노인들은 이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항하자면 총을 들어야 하고, 한번 시작한 내전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할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크림반도에 러시아군으로 추정되는 무장세력이 처음 등장했을 때 타타르족 2만명은 심페로폴 시내 한복판에서 “러시아 반대” “우크라이나 사수”를 외치며 시위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타타르족은 러시아계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말 못할 정도로 욕지거리를 듣고 있다고 한 타타르족은 말했습니다. 오죽하면 타타르족 지도자들이 주민투표 불참을 선언하면서도 거리
시위를 하지 말라고 당부 했겠습니까. 크렘린은 물론 크림 내부의 러시아계와 맞서 싸우기도 버겁다는 걸 인정한 셈입니다. 타타르족에게는 어떤 선택도 내키지 않는 상황입니다. 비극이란 이름을 단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또 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