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호이짜0 2013. 12. 6. 14:21

 Musee d'Orsay ,paris              www.musee-orsay.fr

 

19c중점 작품 - 인상주의 작품 많음. 당시 사람들은 그런 그림을 이해 못함.

20c 미술 작가 - 현대 미술이 시작된 시대

 

구스타프 카유보트 -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화가로 아버지의 유산으로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인 후원자.

마루를 대패질 하는 사람들-1875

 

그 당시 프랑스는 계층간의 문제가 생김. 나폴레옹 3세가  빈민굴들을 정리하면서 골목들은 대로로 바뀌었고 노동자, 빈자들은 교외로 쫒겨났고 알콜 중독자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 그림에 술병들이 많이 등장.

압셍트 , 다림질 하는 여자 등

* 토마 쿠튀르- 쇠퇴기의 로마인들- 이런 그림을 보수적인 사람들은 좋아함,, 아파데미 화가들 그림. 소실점,

 

사실주의

새로운 시대 직시, 그림 등장

* 도미에

3등열차, 공화국- 나폴레옹 3세 공화국 찬양하는 그림 그려 공모전 당선

도미에는 사회현실 참여작가로, 풍자 그림그려 비탄적 시각을 과장 왜곡된 인물표현함

*쿠르베

오르낭의 장례식- 화가의 고향인 오르낭의 한 장례식 모습 묘사

쿠르베는 사실주의자였고 비판적이진 않았다 , 다만 내가 보고 경험한 것만 그린다, 나는 천사를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혁신점인 일상적인 장면을 아주 크게 그림, 일상에서 볼수 있는 장례식.. 종교의 힘이 약해지고 천국과 지옥의 의미없는 그때 그렇게 슬플것도 없는 한 장례식.

십자가는 그냥 성당에서 들고온것이고 신부들은 술을마셔 얼굴이 벌개진 상태.

쿠르베는 아카데미가 주관한 살롱전에서 낙선해서 본인이 부스를 만들어 그림을 전시함.

 

화가의 아틀리에 - 화가로서의 7년간의 은유 라고 칭함.

 

 

쿠르베의 화실을 재현한것은 아니지만, 이 그림은 정작 화가는 그림속에  들어가서 자연을 그리고 있고

누드 모델은 모델로서가 아니라 화가가 추구하는 꾸미지 않은 자연상태를 나타내고자 캔버스의 자연풍경을 동경하는 누드의 모습으로 그림.

좌편은 오르낭의 시골 사람들 같은 모습, 오른편은 도시인들의 모습 표현,, 어느 누구도 그림에 관심없고 흘깃 보는 정도,

다만 어린이 많이 순수한 시각으로 그림에 몰두, 이도 순수한 자연상태를 나타냄.    아카데믹한 시선으로 본인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풍자해서 그림.

* 밀레

밀레는 풍경보다 농부의 모습에 집중해서 그림.... 굉장히 빈곤했던 농부들을 통통하고 괴로운 표정 보이지 않는 편안하고 건강한 상태로 그림.

바르비종파- 파리 근교 퐁텐블로 숲- 화가들이 대도시 파리를 떠나 자연을 그리고자 했던 화가.

밀레그림은 1850년대 보수파와 진보파 모두 자극함.

보수파- 아름답지 않은 인물을 왜 그리는가? 가난퇴치라는 정부의 양속이 거짓이었음을 드러내는 프로라간다 - 선동적 그림

진보파- 정직한 진실된 그림이다.

 

*팡탱 라트르

바티놀의 화실 - 화가는 마네이고 마네의 화실풍경 그림

 

 

*마네

1874-188-년까지 인상주의 전시회에 한번도 출품하지 않음. 살롱전을 통해서 작품을 내야한다고 생각.. 인상주의자와 친분싶음.

풀밭위의 점심식사 - 당시 사람들을 당황시킴. 제목부터 성의 없고 여인의 부도덕한 자세, 시선이 문제가 됨, 그동안 누드는 적당히 수동적인 자세였음.

이 그림은 라파엘로 그림을 라이몬디가 ㅊ판화로 옮긴 파리스의 심판과 조르조네의 전원 음악회의 일부를 따옴,

 

     

  파리스의 심판                                                                                     전원음악회- 조르조네, 티치아노 어느 화가인지 분명치 않으나 티치아노라고 결론 냄.

올랭피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따옴

검은고양이는 성적 방탕 표현, 올랭피아는 당시 흔한 매춘부이름.흑인하녀는 제국주의의 노예 표현.

 

창백하고 누런피부가 시체같다는, 정면 표정등 당시 엄청난 비판을 받은 그림

 

우르비노의 비너스.

이 그림은 살짝 시선이 벗어나잇고 피부 표현은 굉장히 탄력있게 표현,

뒷 배경도 소실점 표현으로 점점 원경으로 빠지게 되어있고 , 강아지가 놓여있다.

 

 

카바멜- 비너스의 탄생은 올랭피아와 대조적으로 호감을 받음

살롱전 당선작으로 제2 제정기의 부정부패 만연한 시대로 퇴폐적인 그림들이 인기몰이.

 

 

*에밀 졸라가 마네 두둔, 화가의 의도를 봘, 보이는 대로 그린것이다, 그의 재능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많은것을  떨쳐버려야한다.

 

에밀졸라 초상- 당시 마네는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은것을 이 그림에 표현해 놓았다.

*피리부는 소년 - 그의 평명성을 좀더 확실히 보여줌, 원근 , 명암 무시. 과고 주제를 자신의 시대로 각색해서 그림.

 

1866년

 

이 그림은 특이한 초상화다. 겉으로 보기에 피리 부는 소년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빅토린 모렝-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는 피리 부는 소년을 모델로 쓰지 않고 모렝을 모델로 삼아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모렝은 마네의 모델 중 한 명으로서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 같은 문제작에도 등장하는 여성 모델이다. 실제의 모델을 표현했다기보다 가상의 현실을 통해 마네는 모렝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이 그림은 <올랭피아>와 <생 라자르 역> 중간에 위치하는데, 이 당시에 마네의 마음에서 일어난 모렝에 대한 태도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그림과 달리 마네는 이 그림에서 모렝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철저하게 감춰놓았다. 숨은 진실을 알기 전까지 이 그림을 통해 모렝이라는 여성을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여성성은 사라지고 사춘기 소년의 모호한 성징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은 모렝으로부터 섹슈얼리티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마네의 심중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누드로 모렝을 그리는 대신 마네는 의상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모렝을 자신의 가정 생활로 편입시키려는 마네의 욕망이 깔려있다. <생 라자르 역>에서 모렝이 유모로 등장하는 것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은 마네의 심경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배경이 없이 인물만 등장하는 구성은 이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초상화의 규칙을 위반한 결과다. 주목해야 할 것은 피리 부는 소년의 시선이다. 그림에서 드러나는 소년의 표정은 관객에게 모호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이런 시선과 표정은 모렝을 모델로 그린 다른 그림 <거리의 여가수>를 연상시킨다. 피리를 입에 대고 부는 모습은 순간의 행동을 포착하는 마네 특유의 관점을 드러낸다. 이런 관점은 동작이나 행동의 통제를 미덕으로 생각한 마네의 취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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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는 세로 161㎝, 가로 97㎝이다. 마네의 1866년 작품으로,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의 모델은 마네의 친구인 르조슨 사령관이 데려온, 황제 친위대 곡예단의 페피니에르라는 피리 부는 소년이다.

붉그스름한 회색 배경 앞에 경찰모자를 쓰고 붉은 바지를 입은 작은 키의 소년이 도드라져 보이는 그림이다. 소년은 얼굴을 정면으로 향한 채 피리를 불고 있다. 이 작품은 손과 발 부분을 빼고는 그림자가 전혀 없는 평면적인 묘사로 인물의 실재감을 표출시키고 있는데, 종이를 바른 것처럼 단순한 배경은 실재감을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마네는 일본의 판화가 우타마로처럼 검은색·붉은색·흰색의 색조로 인물의 실루엣을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1865년 마드리드프라도미술관을 방문하였을 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배웠다는 사실이 마네의 편지에서 밝혀졌다.

이 그림이 1866년 살롱에서 거부되자, 당시 예술의 변화를 예감했던 에밀 졸라는 신문 기고를 통해 마네의 예술을 변호하였다. 졸라는 "그렇게 간결한 필치로 그처럼 힘있는 미적 효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며 마네의 정확성과 간결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생라자르역 - 워싱턴 미술관 소장, 올랭피아 모델

 

모델 빅토린 모렝과 친구의 딸

마네의 여인 - 모델 빅토린 모렝과 부르조아 여성인 모리조,

 

피사로-서리=마무리 되지않은 스케치 같은 느낌

인상파특징- , 나폴레옹3세시대 파리가 급속히 변한 모습을 담은 화가들이 인상주의자들로 빛과 대기의 변화를 추적해서 그림.

그전의 화가들은 익혀셔 알고 있던 대로 틀에 맞춰서 실내에서 그림을 그림.

색은 지속적인게 아니다 찰나의 색을 그린것이고 명확한 평태를 그릴 수 없다.

모네- 개양귀비꽃, 생라자르역 루르 대성당 연작  수련연못(지베르니에 일식 정원 조성)등 이당시 일본판화의 영향을 크게 받음.

모네는 아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함.

 

드가 - 여성 혐오자

실내 풍경만 그림. 하층민 소녀들의 무용 모습- 매춘으로 연결

압생트- 매춘부

목욕하는 여인들 많이 그림- 관음증, 키홀누드라고 불림.- 일본 판화의 영향, 당시 브루조아들은 옷을 입고 목욕했고 자주하지 않음.

그림속 여인들은 매춘부들이고 그당시 청결함을 보이기위해 손님앞에서 목욕하기도 함.

--여성을 모독한다고 비판 받음.

 

이 두 인물은 여배우이자 드가의 모델이었던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와 판화가이자 유명한 보헤미안 캐릭터의 한 사람이었던 마르셀랭 데부탱(Marcellin Desboutin)이다. 그들이 있는 카페는 파리에 있는 누벨 아테네(Café de la Nouvelle-Athènes)로, 마네, 드가와 같은 인상주의자들을 비롯한 근대 예술가들의 모임장소였으며 지적인 보헤미안들의 온상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실제 카페가 아닌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것이며, 드가가 실제와 같은 장면으로 꾸며내어 그린 것이다. 드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였던 누벨 아테네를 배경으로 두 사람이 압생트 중독자처럼 연기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작품이 후에 그들의 명성에 오점을 남길 것을 고려하여 드가는 공개적으로 그들이 알코올중독자가 아님을 대중에게 알리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작품은 두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드가의 초상화의 본보기로 간주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림을 통해 당시 파리지앵의 카페 생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림의 구성을 보면 테이블 근처에서 그들을 보고 있는 사람이 찍은 스냅사진과 같은 인상을 준다.
작품에는 근대 도시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소외가 담겨있다. 그들은 근대화된 도시의 카페에 앉아 술을 마시며 그들의 외로움과 우울로부터 위안을 찾는다. 실제로 이 그림은 급속한 성장의 단계를 겪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에서 사회적 고립이 짙어가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르느와르

르느와르 그림은 색이 얼룩지게 표현하는 인상주의로서 그는 살롱전과 인상주의를 왔다갔다 했다고함.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1881년과 1882년에 이탈리아와 알제리 등을 여행.이 여행은 그가 인상주의에서 멀어져 자신만의 길을 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82년 미술상 폴 뒤랑 뤼엘은 르누아르에게 도시와 시골의 춤을 주제로 두 점의 대작을 주문하였다. 이 두 점의 회화는 도시와 전원의 파리 사람들이 즐기는 유흥을 묘사한 르누아르의 마지막 작품이며, 그가 인상주의와 고전주의 예술 사이에서 양식의 변화를 겪던 시기에 그려졌다.

《시골의 무도회》와 더불어 《도시의 무도회》는 1880년대 이후 르누아르 화풍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점차 윤곽이 분명해지고 선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며 물감 처리도 더 매끈해졌다. 화면구성이나 주제의 선택에서 인상주의적인 분위기가 드러나는 한편, 선의 표현에 있어서는 앵그르와 라파엘로의 고전주의 회화로 복귀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도시의 무도회》에서 르누아르는 1881년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한 친구 폴 로트와 자신이 가장 좋아한 모델이자 화가이며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 수잔 발라동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를 비롯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퓌비 드 샤반의 모델이었고, 이 모든 이들의 연인이었다. 이 그림의 모델로 섰을 때 그녀의 나이는 17세였으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이 아이가 뒤에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가 된다)를 임신한 상태였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에서 상류사회의 무도회를 엄격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였다. 춤을 추는 두 사람 간의 절제된 거리감은 《시골의 무도회》의 역동적인 자세와 대조를 이루며, 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색채에 있어서도 푸른색이 감도는 배경의 대리석 기둥과 역시 푸른빛을 띠는 실내의 나무, 남자가 입은 검은 턱시도와 여성의 흰색 드레스가 도회의 차가운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한없는 아름다움이다.

"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르누아르의 되뇜처럼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도시의 무도회》와 짝을 이루는 《시골의 무도회》는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거슬러 고전주의 화법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881년과 1882년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은 르누아르에게 피렌체의 거장들과 라파엘로를 발견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에 깊은 회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1883년 즈음에 내 작품에는 일종의 단절이 일어났다. 나는 이전에 인상주의 양식을 쫓았으나, 내가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데생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인상주의 화풍과 거리를 두고, 고전적인 순수함과 자신의 화법을 연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였다. 구상적인 측면이 강한 고전주의로 돌아서면서 르누아르는 앵그르의 화법과 데생의 중요성을 받아들였다. 이 작품에서도 뚜렷한 윤곽선과 인물 형상에서 그 영향이 엿보인다.

소박하고 정겨운 전원의 무도회 장면을 담은 《시골의 무도회》는 다소 차갑고 우아한 분위기의 《도시의 무도회》와 대조를 이룬다. 화면 속 남자는 《도시의 무도회》와 마찬가지로 폴 로트이다. 여성은 후에 르누아르의 아내가 되는 알린느 샤리고이다. 풍만한 신체를 가진 알린느의 아름다움은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시선 속에 충만한 행복감을 드러낸다. 특히 활짝 펼쳐든 부채와 여성의 붉은 뺨, 바닥에 떨어진 남자의 모자에서 무르익은 무도회의 흥취가 한껏 느껴진다. 

 

*베르트 모리조 - 여성화가, 여성들은 미술학교 입학않되 개인교습만 가능하던 시절, 역사화는 그릴수 없었음.

요람

 

신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쉐라 세잔, 고흐 고갱

인상주의와 같이 생활하였으나 생각이 달라 독자노선 달림

쇠라 - 과학주의 화가,, 순색을 섞지않고 찍어서 그림. 눈에선 그게 섞인 색으로 보인다고 생각

세잔 - 정물화 - 형태의 견고함 중시, 인상주의와 달리 형태를 존중

사과와 오렌지- 불안정한 정물, 다양한 시선을 통한 정물들을 모아놓음, 자연스러움이 아닌 화가가 분석한대로 재창조한 그림.

 

 

 

 

* 고흐, 고갱 - 눈에 ㅗ이지 않은 내면의 세계, 작가의 감정의 세게를 표현

고흐- 벌이 빛나는 밤, 알를의 불두칠성 표현,,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색채 사용

색채대비  노랑- 파랑, 빨강- 초록 사용

아를의 방- 평화로운 시절  10년동안 유화 900점, 1100점이 넘는 그림 그림.. 오베르에서 2달 동안 60 여점 유화그림

고갱-원시적이고 순수한 모습이 아름답다 .tkdwldwndml

 

모로 - 오르페우스     상징주의 선구자,,, 주제 모호한 의도적으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그림, 암시적인 그림

 

     청년과 죽음의 신

오딜롱 르동- 부처 1905년    신비하게 표현

앙리루소 - 선쟁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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