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총천연색의 도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걸음을 뗄 때마다 건물의 색이 바뀌고 골목의 흐름이 넘실대는 곳. 총천연색의 도시 ‘바르셀로나’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0)의 도시.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찾는 이들은 가우디의 건축물 순례에 거의 모든 시간을 바친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를 가우디에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흥망성쇠가 바르셀로나에 응집돼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제2의 도시다. 수도 마드리드가 ‘화려한 숙녀’라면 바르셀로나는 ‘춤추는 무희’의 느낌이다. 그만큼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바르셀로나의 1인당 소득은 스페인 평균보다 20% 이상 높다. 이곳의 수출량도 스페인 총 수출의 5분의 1 이상을 감당한다. 연중 340일 맑은 날씨인 지중해성 기후에 수많은 문화유산이 더해져 연간 3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바르셀로나 여행은 중심부, 북부, 몬주익 등으로 권역을 나눠서 돌아보면 편하다. 가우디, 예술, 산책, 쇼핑, 맛집 등으로 주제를 정해 골목골목을 훑는 것도 재미있다. 이번에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 바르셀로나를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고딕 지구’를 찾았다. 기원전 2000년 전 아프리카인들이 현재의 바르셀로나 구도심과 몬주익에 들어왔다. 기원전 1년경에는 로마가 도시의 경계를 알리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성벽을 세웠다.
이후 717년부터 약 100년간 이슬람이 바르셀로나를 지배한다. 지금의 바르셀로나가 형성된 건 1137년에 라몬 베렝게르 4세가 아라곤 왕의 딸과 결혼하면서부터. 카탈루냐까지 포함하는 ‘아라곤 왕국’이 탄생하면서 바르셀로나는 수도가 됐다. 고딕 지구는 12~13세기에 걸친 아라곤 왕국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 아라곤 왕국은 이슬람이 약화된 틈을 타 강한 해상력을 바탕으로 시실리아, 세르데나, 나폴리 등을 아우르는 지중해 주요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때 지어진 건물의 주된 양식이 ‘고딕’이었다.
고딕 지구의 중심에 ‘카테드랄’이 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이다. 1298년부터 150년 동안 건축된 카테드랄은 카탈루냐 특유의 고딕 양식을 띠고 있다. 성당 내부 중앙에는 성가대석이 있다. 성가대석을 에워싼 대리석에는 성녀 산타 에우랄리아가 처형되는 순간이 조각돼 있다. 바르톨로메 오르도네스가 제작한 이 조각은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 걸작으로 꼽힌다.
카테드랄은 건물 자체보다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광장과 골목이 더 매력적이다. 성당 앞 계단에는 항상 사람들이 앉아있고 곳곳에서 거리음악가들이 연주를 이어간다. 적당히 경사진 미로같은 골목을 돌아나가면 기대 이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성당 정면에서 왼쪽 골목은 ‘왕의 광장’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피엣타길이라 부른다. 왕의 광장에서는 중세 때 종교재판이 열렸다. 큰 저울의 한쪽 끝에는 거대한 성경이, 다른 끝에는 죄수가 선다. 성경보다 무거운 사람은 이교도고, 가벼운 사람은 개종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살아남았다. 검은 이끼가 낀 돌벽을 따라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길이다. 이 골목을 돌아나가면 비스베길이다.
성당 주위 길 중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다. 거리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한다. 길은 산 자우메 광장으로 이어진다. 산 자우메는 예수의 12제자 중 야고보를 카탈루냐어로 읽은 것이다. 산 자우메 광장에서 리세우역쪽으로 가면 람블라스 거리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바다까지 1.3㎞에 이르는 람블라스 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길”이라 표현했다. 이 길은 여행자에게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람블라스는 아랍어로 ‘물이 흐르는 길’을 뜻한다. 원래 콜세롤라산에서 바다까지 물이 흘렀지만 지금은 물길이 끊겼다. 대신 사람들의 물결이 흘러간다. 꽃가게와 노점, 산 조세프 시장, 리세우 극장, 구엘 저택 등이 흩어져 있다. 길은 바다에서 끊어진다. 이 바다를 통해 바르셀로나는 해상왕국의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영광은 길지 않았다. 페스트 창궐과 오스만제국의 등장으로 기세가 꺾였고, 1492년 콜럼버스의 중남미 발견 이후 본격적인 쇠퇴의 길을 걷는다. 지중해 중심 항구인 바르셀로나 대신 마드리드가 중남미 식민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바르셀로나는 1800년대 들어 재기한다. 1836년 자유산업도시로 지정되고, 1888년에는 만국박람회가 열린다. 람블라스 거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대학이 다시 열린 것도 이 시기다. 가우디를 비롯한 모더니즘 건축가와 파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천재 미술가들이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활동한다
“신이 일찍이 자연을 만들었고 건축가는 그것을 계승한다”고 말한 가우디의 건축물은 도시 곳곳에서 개성을 발휘한다. 람블라스 거리의 구엘 저택, 아직도 건설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100년 전 공동 아파트 ‘카사밀라’ 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가족 성당’이라는 뜻. 멀리서 보면 거대한 돌덩어리지만 가까이서 보면 하나하나가 성경 내용을 담고 있는 조각품이다.
1883년 시작된 건축은 1926년 가우디의 사망으로 기로에 놓인다. 스페인 내전, 건설회사 도산, 성금 모금 부진 등의 이유로 몇십년 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이 성당을 가우디 건축의 결정체라고 하지만 균형미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이어붙였기 때문이다.
구엘은 스페인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후 등장한 신흥갑부 2세였다. 가우디와 구엘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예술, 건축 등에서 동반자였다. 구엘이 후원하고 가우디가 건축하는 식이었기에 ‘구엘’ 이름이 붙은 건축물이 많다. 바르셀로나 북부에 있는 구엘공원은 ‘자연 속에 직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괴테의 자연론에 영향을 받은 가우디 건축철학을 잘 보여준다.
모든 조형물이 거침없는 곡선과 총천연색 타일로 이뤄져 있다. 공원 언덕에서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끝에는 코발트빛 지중해가 선명하게 펼쳐진다. 유독 천재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이유를 알 듯하다. 좋은 것만 이야기해도 부족한 곳이 여전히 꿈틀대는 도시 바르셀로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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